* 이 글은 다른 곳에 올렸던 글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계절이자, 군인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하는 계절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이 글이 떠올라 옮겨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눈가의 흉측한(?) 주름만이 아니다. 나는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만나는 군인을 통해서, 세월이 이만큼이나 지나갔음을 알게 되곤 한다.

@ 동서울 터미널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동서울터미널 앞으로 이사와 삼십대에 들어선 지금, 그 시간만큼이나 내 눈에 비친 군인의 모습도 많이 달라 보인다. 터미널 부근을 서성이는 것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물을 갓 넘은 어린 남자들인데, 그들은 언젠가 나에게 있어 '아저씨'에서 '오빠'로, 다시 '친구'에서 '남동생'으로 바뀌었다. 마치 나만 나이가 든 것처럼. 

처음 터미널 앞으로 이사와 환호성을 질렀던 것은 집이 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집이 바로 터미널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더 컸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했겠다, 말로만 듣던 스무 살 성인이 되었으니, 나를 말리지 마세요, 나는 언제라도 집시처럼 홀연히 떠났다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와 살겠어요, 라고 부모님께 큰소리쳤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동서울터미널을 거쳐 혼자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나 왜 여기 이사 와서 좋다고 환호한 거래….

그럼에도, 터미널에는 정말 자주 갔었다. 여러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군인' 선·후배, 동기들을 마중 나가고 배웅 나가는 것이었다. 부대와 통하는 버스가 많았던 탓에, 내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이 동서울터미널을 거쳐 가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 진짜 착했다(?). 많은 녀석을 거의 다 맞이하고 떠나보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역시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헌데, 이 '군인'들은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잘 맞추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지라,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하면 전화벨(핸드폰 사용이 흔치 않던 때)이 울렸다. 그때를 놓친 놈(?)들은 반드시 삐삐를 활용하는 영리함(?)도 보여 주었다. 효진아, 나 휴가 나간다. 터미널에서 잠깐 보자.


내 코 묻은 용돈을 쪼개어 쓰는 것도 눈 돌아갈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나보다 더 용돈이 궁한 녀석들 아닌가. 술 한잔 덜 먹자는 각오로 국밥 한 그릇 사 먹이고, 더울 때면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때때로 귤이랑 음료도 사서 손에 쥐어 보냈다.

어리바리하게 굴다가 머리에 맞지 않는 모자를 쓰게 된 녀석의 이마에 앉은 딱지와, 한겨울에 코트도 걸치지 못하는(안 걸친 건가?) 군복, 그리고 거칠게 튼 손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서 코끝이 늘 시큰거렸다. 때로는 좀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막상 터미널에 나가 만날 때면, 그래도 내가 나오길 잘했지, 하며 잠시 귀찮아했던 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두 팔 벌려 반가워하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눈물 참을 때) 보낸 선·후배, 동기들은 모두 터미널을 떠났고, 훨씬 전부터 또 다른 앳된 녀석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오래전에 본 나의 '군인'들과 같은 모습이다. 달라진 것은 내가 그들을 볼 때 느끼는 마음. 왜 이렇게 파릇파릇해 보이는 걸까. 사실은 그래서 더 안쓰러워 보이지만.

날마다 스치는 터미널 앞 군인들. 다 내 자식 같고(나이 서른에 이런 느낌이 오다니!?), 내 동생 같아서 볼 때마다 따뜻하게 한 번 포옹도 해주고 싶고, 밥 한 그릇 사주고 싶다. 입안에서 그 말이 맴돌지만 뱉을 수는 없다.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 같다. 아니, 좋아하려나?



Posted by 슈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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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namoth 2007/11/06 22:0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 훈훈한 글이네요^^; 몇년이 흘러도 휴가나온 군인의 그 알수없는? 적막감은 그대로일듯 싶고요 ㅎㅎ

    • 슈테른 2007/11/07 12:07 Address Modify/Delete

      그러게요..
      제가 군대에 가본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휴가 나온 군인들에게.. 정말 그 어떤 적막감이 있어 보여요.. ^^;;

  2. egoing 2007/11/09 12: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방금 막 2달 고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참 반갑더군요.
    친하던 녀석들은 모두 연락이 안되는 데
    이 정도로 친하진 않았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옵니다.
    그건 그렇고, 애국하신 겁니다. ^^

    • 슈테른 2007/11/09 19:40 Address Modify/Delete

      그쵸그쵸?
      위문편지는 또 얼마나 열심히 썼는지.. ^^;;
      국방부에서 상줘야 한다니까요. ㅋㅋㅋ

  3. shumahe 2007/11/11 19:19 Address Modify/Delete Reply

    ㅎㅎ 겨울에 보면 군인들은 좀 더 안되게 보이곤하죠^^ 이렇게 생각해 주시는분이 있으리라 생각하긴 했었는데 이렇게 글을보니 왠지 지금 들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동서울로 휴가 나왔는데 그때 효진님 만났서 국밥한끼 얻어 먹었었으면 정말 좋았을꺼 같네요^^

    • 슈테른 2007/11/12 01:11 Address Modify/Delete

      그러게요..
      제가 그때도 shumahe님 알았으면 국밥 한그릇 쯤이야. ^^;
      귤도 사드렸을거에요. ㅎㅎㅎ

  4. jeongism 2007/11/13 06:2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 여기에 숨어계셨군요!
    딱 걸렸네요. 즐겨찾기하고 종종 들릴께요.

    잘계시죠?

  5. 미유 2007/11/16 12:0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동서울터미널통해서 부산이라도 가따오면 어떠케 국밥 좀 안댈까여 ㅋㅋ

    • 슈테른 2007/11/16 18:33 Address Modify/Delete

      앗.. 제가 지금은 이사를 가서.. 아차산 옆 앞에 산다는...ㅎㅎ
      그래도.. 멀지 않은 곳이니 연락 주시면 사드릴께요.
      집에서 10분거리.^^

  6. 함영진 2007/11/16 21:0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동서울터미널을 통해 군복입고 왔다갔다 했다는...^^ 미리 슈테른님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ㅋ (근데 나도 무슨 이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 슈테른 2007/11/20 10:26 Address Modify/Delete

      어느새 다녀가셨네요.. ^^;
      닉네임 예쁘게 하나 만드세요..
      아, 그리고 국밥... 지금이라도 사드릴 수 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