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어?
바람의노래 2007/09/14 10:40 |독일어는 내 운명?
# 나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있었으나 배우는 '나'는 없었으니, 그냥 그런 수업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해야겠다. 때문에 3년 내내 내 독일어 점수는 평균 40점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근근이 살아남아(?) - 늘 얘기하지만 기적적으로 - 대학에 갔다. 수능 점수에 맞춰서 억지로 대학에 갔더니, 아뿔싸. 나는 독일어과에 입학해 있었다.
# 대학 입학 후 1년이 넘도록 나는 독일어를 읽을 줄조차 몰랐다.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대학생활이 각종 동아리 활동으로 나에게 의외의 즐거움을 주면서 가뜩이나 구역질 나는 독일어와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학사경고장이 날아들었다. 공부 못한다고 대학에서도 뭐라 할 줄이야…. 제길! 어떻게든 메워 보려고 고민을 했는데, 방법은 하나였다. 졸업할 때까지 매 학기 꽉꽉 채워서 강의를 듣되, 단 한 학점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등록금을 한 번 더 내고 학기를 연장해서 다니던가 졸업할 때까지 ‘돈 먹는 하마’와 같은 계절학기’를 꽉꽉 채워 들어야 할 판이었다. 도대체 그 누가!!! 나에게 대학이 자유롭다 했는가!! 이렇게 '빡센' 것을.
# 나는 어린 시절, 대학보다는 대학로에 관심을 더 보이며 연극배우를 꿈꾸던 고교생이었으나, 어르신들이 인도해주는 평범한(?) 그 길을 박차고 나올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대학 문을 열고 들어섰으며, 당장 그만둘만한 배짱 또한 없었기에 어느 날 큰 결심을 했다. '그래, 등록금은 건지자.'. 등골이 휘어지게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그게 또 그렇게 갑자기, 쉽게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인연을 맺은 독일어는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재미가 붙다 보니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 수개월간 독일에서 공부하게 되는 행운까지 거머쥐었고, 정상적으로 8학기 만에 졸업도 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친구들과
나는 영어도 못했고, 경영학과 졸업생도 아니었고,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고, 키도 작고 눈에 띄지도 않았다. 이런 나를 데려가 일을 시킬 회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약간의 독일어뿐. 수십 개의 입사지원서가 경쟁하듯 미끄러졌다. 모두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당신은 필요 없어요.”
나는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될 만큼의 독일어 실력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닌 독일어를 원하는 곳은 대개 고급 언어의 세계(이를테면 동시통역이나 번역) 뿐이었다.
# 현실에 이끌려 살다가 독일어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졸업 후 또다시 그놈의 현실 때문에 독일어와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영어와 가까워지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별로 친해지지 못했고, 복잡하고 힘든 과정 끝에 독일어도 영어도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졸업 후에 갈 곳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회사'라는 곳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갈 곳을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이었고 독일어를 배우면서 단 한 번도 독일어와 관련된 내 미래를 그려보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는 것을, 스물일곱의 12월 무렵에야 깨닫고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나는 적으나마 경제활동을 해야 했기에 일단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취업에 목말라 하던 그때, 사회에 먼저 발 디딘 선배들은 대기업이나 중, 소기업 등 가릴 것 없이 나에게 토익의 중요성에 대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강조했다. 독일어과 교수가 되거나 통역대학원을 목표로 공부할 생각이 없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디를 가더라도 너의 전공을 내세우지는 마라.
물론, 주변 사람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어떤 틀 안의 것을 목표로 했을 때에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가까운 미래만 본다면 당연히 독일어는 가치 없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국제적으로 가장 첫 번째로 통하는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인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한국의 현 상황에 비추어봤을 때,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그 수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사만 요리를 해야하는 건 아니지
# 그럼에도, 독일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스페인어, 아랍어, 체코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 실력이 모국어 뺨치듯 하지 않아도 그런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번역을 하고 통역을 하거나 외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만이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요리사만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어머니도 만들고 옆집 아저씨도 만드는 요리의 다양한 손맛이 많은 삶의 풍경을 만들어 내듯이 언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독일어를 두고서 저마다 다른 역량을 가지고 경험을 하고, 그래서 그 숫자만큼이나 다른 삶을 다른 사람과 풍부하게 공유할 수 있다.
# 어느 날 내다버린 독일어를 다시 하나씩 주워담으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번역도 하고 통역도 할 수준에 이르면 더욱 좋겠지만, 내 목표는 아니다. 독일을 여행할 때 그곳의 사람들과 더 깊게 만날 수 있으면 되고, 체코에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체코인을 만나 담소를 나눴던 그 경험이 한 번만이라도 되살아난다면 충분할 것이다. 그걸로 내 삶의 자양분을 또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다면 독일어를 공부하는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욕심을 하나 부리자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와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서로 술술 읽고 싶다는 거.
누구나 외국어를 공부 할 필요는 없다
# 매우 두서없는 이 긴 글의 끝에 내가 말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누구나 외국어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마 독일어를 전공하게 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대학에 갈 필요도 없으니.
가난한 연극배우가 되어 대학로 한구석에서 배고파하면서도 좋아하며 살았을지 모르겠다. 혹은 정말 잘 돼서 세계적인 배우가 됐을 수도 있는 일 아닐까? 내가 교육받은 '삶'에 대한 기준이 달랐다면 아마 나는 어느 쪽이든 행복할 것이다.
다행히 결과적으로 내가 독일어에 취미를 붙여서 다시 공부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쨌든 찝찝한 일이다.
헤아리기 어려운 다양성을 갖춘 세상을 기대한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으로 봐서는 아주 오래 걸릴 듯싶지만. 그래도 그런 날이 아주 오지 않지는 않지 않겠는가? (이 문장 정리 안되네.) 모두가 영어에만 매달릴 때, 모두가 대기업 입사를 꿈꿀 때, 너도나도 무역업을 하겠다고 할 때, 길에 차이는 사람이 모두 사장님일 때, 대한민국은 정말 심심한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나는 내일부터 ‘취미로’ 독일어를 공부한다. 남들은 정신 차리고 영어나 잘하라고 하지만.
TAG 독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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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블로그 이름도 미묘하게 쥐스킨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외국어를 잘하면 못하는 것보다 더 놀거리도 많을거고 읽을 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을텐데,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요 :)
제 블로그 제목.. 쥐스킨트하고 정말로 연관 있어요..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콘트라베이스'에서 따온 것이지요..ㅎㅎ
예리하시군요~~^^
앗...저도 고등학교때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했었는데^^;; 근데
구튼탁~ 밖에 모른다는거^^;; 슈테른님 글을 읽으면서 옛날 생각 많이 했네요^^ㅋㅋ
오. 많이 아시는 거에요..
저.. 고등학교 때.. 독일어 배웠지만.. ㅠㅠ
구튼탁도 기억을 못했다는 거.. ^^;;;;
저희 집에 독일에 유학간 친구놈이 기생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슈태판인가 하는 넘이란 채팅하다 잔다며 하나 밖에 없는 랜선을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더군요. (저희 집은 노트북 3대에 PC가 1대이지만 인터넷 라인은 하나 밖에 없는지라) 오늘 집에 돌아가면, 녀석이 언어 이면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겠습니다. 귀한 글 잘 봤어요.
저희 집도.. 컴퓨터 3대를 돌렸죠...
PC는 Personal Computer다.. 라는 것을 강조하며..
랜선을 예쁘게 나눠썼어요...ㅎㅎ
흠.. 친구의 언어 이면을 어쩐지 알 것만 같군요. ㅋㅋ
'독일어'라는 말에 무작정 반가워 인기척합니다.
블로깅은 우연과 마주침의 연속이네요. ^
반갑습니다. ^^
저도 살짝 발자국 남겼습니다. ~.~
맞는말이다 요리사만 요리하는게 아니듯
음악을 잘해서 돈잘 버는사람들이 하는쪽 보다는
음악이 좋아서 하는사람이 더 많을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