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싸개의 후회 - 우식이 오빠에게
연애시대 2007/09/27 10:04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그냥 걸레로 닦아 버리고 앞으로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기억이 없을 수는 없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까지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 이성에 눈뜨기 -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이 이때부터니까 -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늦겠다며 엄마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는데, 그래도 내가 꼼짝하지 않자 엄마는 내가 덮은 이불을 확 걷어버렸다. 너무나 평화롭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다. 또!
화가 난 엄마는 마구 야단을 쳤고, 어깨였던가 등이었던가…., 아무튼, 내가 몇 대 맞았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이대로 엄마한테 회초리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2층 주인집 할머니에게 가서 소금을 받아올 것인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매가 무서웠던 나는 소금을 받아오는 일이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금을 받아 오겠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키 대신 주홍색 바가지를 머리에 얹어주고 얼른 다녀오라고 재촉했고, 나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는 채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우느라고 할머니에게 제대로 말도 못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을 보고 호호 웃으며 얼른 소금을 내주었다. 그리고 내 몸에 뿌리기까지 했다. 그래야 다음에 안 그런다나 뭐라나.
할머니에게는 잘생긴 손자가 하나 있었다. 우식이 오빠라고. 나보다 4~5살 정도 많았는데, 쭉 빠진 다리와 날카로운 눈매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10살 때 기억임.) 어쩌다 등굣길에 오빠를 만나게 되면 같이 가자고 쫄래쫄래 따라가곤 했는데, 그런 내가 부끄러웠는지 따라붙을수록 걸음을 빨리하곤 했었다. 나는 끊임없이 "우식이 오빠! 같이 가!"를 외치며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내디뎠지만, 학교가 가까워질 때면 오빠는 이미 저만큼 멀어져서 150미터쯤 앞서 있었다. 멋진 우식이 오빠가 바로 옆 중학교로 우회하는 뒷모습을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우식이 오빠가 있는 2층에 가서 이불에 오줌쌌다고 소금을 받아 온 것이다. 엄마한테 맞는 게 무서워서 - 진짜 매움 - 소금 받아오기를 택한 것인데,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를 보는 순간 후회했다. 아, 우식이 오빠가 있었지. 제발 날 보지 않기를!
우식이 오빠가 그런 나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재미난 사건이 2층 집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후회된다. 이 한 몸 잠시 회초리로 버티고 말 것을 나는 왜 소금을 받아오겠다고 했는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 엄마는 소금 효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우식이 오빠 효과' 다. 엄마한테 맞기도 싫고, 바가지를 쓰고 우식이 오빠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말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날로 잠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고 싶다. 엄마가 자주 애용했던 기다란 구둣주걱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우식이 오빠! 저랑 나란히 등교 한 번만 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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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전영지 기자님 감사합니다~
Tracked from 꼬날의 좌충우돌 PR현장 이야기 2007/09/29 01:32 Delete어제 저녁 퇴근 무렵에 울린 핸드폰 벨소리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스포츠조선의 전영지 기자였다. (참고로 꼬날이는 발신자 그룹별로 다른 벨소리를 쓰고 있는데, 기자분들의 전화 벨소리는 이한철의 '슈퍼스타'다. 늘 희망찬 마음으로 받고 싶어서 .. :-) 아이~ 꼬날님~ 잘 지내요?여느때와 같이 남들보다 두 톤 높은 전영지 기자의 목소리.. 아이고~ 전기자님. 명절은 잘 보내시구요?라고 인사하자 전기자가 전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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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습관대로 진지하게 말하면, 프로이트는 바로 그 순간에 인생이 결정된다고 하더군요. ㅋㅋ 저는 말을 안들어서 비오는 날 나신으로 밖으로 쫏겨난 적이 있었습니다. 갈데는 옥상밖에 없더군요. 아마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사건일 듯.
전 엄마가 쫓아내면.. 문고리 붙잡고 울고불고 매달렸어요.
옥상이 없는 집이라.. 정말 갈데가 없었거든요. 흑흑..
전 소실적 10살쯤에 짝사랑 하던 같은반 친구를.....
엄마 쫒아간 여탕에서 만나드랬죠....
제가 남들 보다 좀 늦게까지 경험을 한편이긴하지만
그 이후로는 여탕이 싫어졌던 기억이 있군요....훗훗훗(지금은 좋을거같은데)